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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그 삶과 음악 본문

문화적인 인싸 코스프레/500자 독후감

베토벤, 그 삶과 음악

Halkrine 2016. 7. 14. 20:58



1. 첫사랑을 경험했던 게 15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런 목적 없이 시간에 몸을 맡긴 채 될대로 되란 식으로 살았던 것 같다(그래봤자 10대였지만). 행동거지도 남자였고, 겉으로 섬세함을 드러내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fall in love가 시작된 이후, 많은 것이 변하여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의 초석이 나도 모르게 쌓이게 되었다. 단지 그녀에게 잘보이기 위함이 목적이었지만, 학습과 용모 꾸미기, 평소 듣도 않던 음악 듣기 등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연심을 품고 종업식 때 고백하기 위해 집에서 편지를 몇 장이나 써내려갔는지 모른다. 짧게는 쪽지로, 길게는 편지지 몇 장 분량을 써내렸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리고 다시 쓰기를 수회 반복하였다. 그래서 완성한 게 조그만 쪽지 한 장. 편지를 가장한 쪽지를 건네주려고 했지만, 용기가 없어 내 마음은 결국 전하지 못하였다.

로맨스 가이 베토벤의 편지를 보니, 내가 그 당시에 썼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보다 섬세한 로맨티스트였다는 건 알겠다. 책에서는 그의 러브레터가 난잡하여 이해하기 힘든 구문이었다 했지만, 나에게는 한 편의 연애편지 교과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그녀를 회상하며 들었던 음악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나날들처럼 크게 절실하지는 않다.

2.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지 못해 재야에 묻히는 안타까운 천재들은 이 세상 도처에 널려있다. 그것을 항시 드러내는 것이 자신감의 표출인지, 자의식 과잉인지는 사람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누군가에게 드러낼 기회가 있다면, 어느 정도 정제된 자세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설픈 (자칭)'천재성' 을 드러내려 하다가 부끄러웠던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기에.

내 소견을 통해 비추어볼 때, 베토벤의 공연 중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중에 끊어버리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재가 아니라 그런 걸까.

3. 초등학교 1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두 번 다녔다. 한 번은 잘 다니다가 친구랑 피구하던 도중 새끼손가락이 삐어서 중도 하차해야 했고(지금도 새끼손가락이 약간 어긋나 있다), 한 번은 바이엘 5권까지 마치려던 순간 다니던 학원이 급작스레 늘어 포기해야 했다.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피아노 레슨은 연습표에 동그라미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기에, 건반을 누르는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는다는 건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얼마전에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다가, 아파트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예전같으면 '아 피아노 치는구나' 하고 넘겼겠지만, 지난 달에 보았던 만화의 영향인지 그 소리에서 '에이씨 연습하기 싫어!' 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까, 잘 치다가 갑자기 쾅쾅 소리가 난 이후 한동안 피아노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천재라는 수식어를 배제하더라도, 음악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누군가에게 연주자의 경험을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은 축복받았다 생각한다. 비록 베토벤이 공연 중 땡깡을 많이 부렸다는 일화가 있다 하더라도, 한 번 감정을 녹여 피아노를 개시했을 때 청중들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각종 클래식을 통해 그의 연주를 간접 체험하지만, 과거 베토벤의 세대를 살지 못한 건 정말 아깝다.

물론, 다른 연주자들도 각기의 영혼을 담아 청중에게 들려주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이 글은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경험한 후 적은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내용은 배제하였다.


* 추천 도서 : 이치고 동맹